어느 이름모를 할머니의 5천원

흑백테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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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4. 6. 08:22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는데 아마 작년 12월 초였던 것 같다. 점심을 먹고 사무실이 있는 2층을 계단으로 올라가려고 하는데 어떤 할머니가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 선생님 너무 배가 고파서 그러는데 5천원만 주세요."  

행색을 보니 옷차림도 깔끔하고 얼굴도 하얗고 깔끔했다. 나도 시골에 그분과 나이가 비슷한 할머니가 계시고, 설사 구걸하는 사람들이 가짜이거나 앵벌이라고 해도 일단 도와주는 것이 맞다는게 내 신념이었기 때문에 선뜻 5천원을 드렸다. 고마워 하는 할머니를 뒤로 하고 올라오는데 동료들은 '저 할머니 프로(가짜)다.' '왜 돈을 주냐, 그건 도와주는게 아니다'라는등 시골에서 올라온 나를 촌스럽다는 듯이 다들 한마디씩 했다. 그런데 동료들이 나를 더욱 촌스럽게(?) 생각하는 일이 벌어졌다. 문이 열리더니 아까 그 할머니가 우리 사무실에 다시 들어 온것 아닌가?

"선생님 5천원만 주세요."
"할머니 제가 아까 5천원 드렸잖아요."
"아 그래요. 밥 잘 먹었어요. 고마워요."


나에게 인사를 건네더니 나가셨다. 동료들은 다시 한번 내가 속았다고 한마디씩 하는데, 바로 옆사무실에서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선생님 배가 고파서 그러는데 5천원만 주세요."

그렇다. 할머니는 이 빌딩 전체 사무실을 돌면서 5천원씩 구걸하고 다니고 있었다. 정말 할머니는 프로였을까? 잠시 고민을 하기는 했어도 내가 5천원을 준걸 후회하진 않는다. 그런데 3달이 지난 며칠후 다시 그 할머니를 보았다. 점심을 먹고 사무실에 올라와 잠시 동료들과 수다를 떨고 있는데 몇달전 그 할머니가 사무실 문을 열고 다시 들어오는게 아닌가. 

"선생님 식권 하나만 주세요."
"할머니 오늘은 죄송합니다."


생각해볼틈도 없이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먼저 나온 말이다. 여러 생각을 했다. '무슨 사연으로 구걸을 다니고 계신걸까' '행색만 보면 구걸하며 살 것 같진 않아보이는데' '5천원을 다시 드렸어야 했나' 
누가 그 할머니를 거리에 나오게 만들었을까. 그 할머니나 자식들을 탓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그렇지 않으니까 저렇게 다니실테니까. 늙어서도 인간으로써 자존심만은 지키고 싶을텐데, 그놈의 돈때문에 구걸을 하게 만든다. 가진게 없는 사람들도 자존심만은 버리지 않도록 최소한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우리 사회 복지 수준이 조금만 더 높아 졌으면 좋겠다. 

우리나라 경제가 아직 갈길이 멀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또 어렵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사실 경제가 어렵긴 하다. 하지만 늘상 자랑처럼 말하지 않는가. 세계 10대 경제 대국이라고.  얼마나 돈을 더 벌어야 우리는 만족할 수 있을까. 요즘에야 말로 소외되고, 뒤쳐진 사람들에게 관심과 사랑이 필요할 때다. 다음에 그 할머니 다시 만나면 주저 말고 도와드려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