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오락관 폐지와 KBS의 공영성

흑백테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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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4. 2. 21:15

국민 오락프로그램 '가족오락관'이 KBS 봄 개편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1984년부터 녹화를 시작해 26년이라는 세월을 국민들의 웃음을 책임져준 프로그램입니다. 매년 개편때마다 '전국노래자랑'과 더불어 폐지 논의 프로그램중에 단골로 거론되곤 했죠. 하지만 말초적 웃음만 존재하는 방송가에서 공익성과 웃음을 동반한 프로그램은 많지 않아서 유지되곤 했습니다. 젊은이들을 위한 프로그램만 난무하는 상황에서 어른들이 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프로그램이라고도 볼 수 있었습니다.

저는 사실 봄개편으로 '가족오락관'이 사라지는걸 저번주 KBS 앞에서 식사를 하다 우연히 옆테이블에서 관계자로 보이는 분들의 이야기 속에서 들었습니다.
"봄 개편으로 시청률이 안 좋은 가족오락관이 폐지될 것이다"

폐지될거라는 말을 들었지만 확인이 되지 않은 이야기라 포스팅을 안했는데 오늘 기사를 보니 마지막 녹화를 했다는군요. 26년동안 여자 MC는 많이 바뀌었는데 남자 MC는 허참 혼자 진행했습니다. 허참씨의 담백하고 깔끔한 사회는 시청자들을 마음을 편하게 하는 능력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요즘 들어서는 '가족오락관'을 거의 시청하지 않았습니다만 어려서 리모컨 권력이 아버지에게 있을땐 늘 '가족오락관'을 봤습니다. 무슨무슨 교통봉사회라든가 어머니회가 방청객으로 나오고 방송에 잘 보이지 않는(잘 나가지 않는) 연예인들이 나오는 포맷은 수십년동안 바뀌지 않았죠.


이제 허참씨와 '가족오락관'은 역사속으로 사라졌습니다. 동시에 제 추억도 마음속에 간직해야 겠군요. '전국노래자랑'도 얼마나 갈지 모르겠습니다. '가족오락관'의 퇴출이 단순히 프로그램이 오래되고 시청률이 저조해서 없어지는 '가족오락관'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과도한 해석이라고 하실 수도 있습니다만, 이명박 정권들어서  방송이 정권에 농락당하면서 KBS도 공공의 이익을 위한 방송이기보다는 점점 돈에 눈이 멀어가는 것 같습니다. 얼마전 인기를 끈 '꽃보다 남자'가 사실 공영방송에서 방영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내용이었죠. 연이은 막말 논란과 스타들의 신변잡기에 취해 있는 요즘 방송가를 보면 '가족오락관'의 부재는 더욱 안타깝습니다.

프로그램도 언젠간 폐지되어야 하겠죠. 하지만 '가족오락관'의 폐지가 아쉬운 것은 미련이 아니라 그 프로를 대신할 프로그램이 과연 방송가에 존재하느냐 입니다. 삼대가 함께 눈살 찌푸리지 않고 웃으며 볼 수 있는 오락프로그램을 기대하는건 시대에 역행하는 일일까요. 오랫동안 시청자와 호흡하면서 희노애락을 같이 할 국민MC를 기대해 봅니다. 

허참씨가 프로그램에서 늘 말하던 멘트를 쓰면서 마치겠습니다.

"몇대에에~ 몇~!?"

ps. 생각해보니 이명박 정권에 어울리는 가족오락관 게임이 있었는데 폐지되어 아쉽네요. 그 왜 있잖아요. 출연자들이 시끄러운 헤드폰 끼고 앞사람이 말한걸 마지막 사람이 맞추는 게임. 소통 안되는 지금 정부와 딱 어울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