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전교조 명단공개와 1950년 보도연맹 사건

흑백테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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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5. 28. 17:11

공주 금강변 학살지(살구쟁이)로 끌려가는 보도연맹원


몇년전 아르바이트로 한국전쟁 당시 보도연맹 사건으로 희생당한 민간인에 대한 조사를 한적이 있다. 알다시피 보도연맹 사건은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한국정부가 후퇴하면서 보도연맹에 가입한 민간인들을 한국 군경이 학살한 사건이다. 공주시엔 당시 공주교도소가 있었고 충남에서는 큰 규모의 도시였기 때문에 많은 학살자가 발생했다.

인민군에게 서울이 함락당하고 시급히 후퇴를 하던 한국군경은 일사분란하게 면단위의 보도연맹원들과 교도소 재소자들을 금강변으로 끌고가 무참하게 학살했다. 이 사건은 공공연한 비밀었다가 불과 수년전에 세상에 알려졌다. 학살지로 의심되는 곳을 실제로 발굴해보니 많은수의 유골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약 천여명의 민간인이 한국군과 경찰에 의해 학살되었는데 피해자들은 시신을 찾기는 커녕 기억속에서 잊기에 바빴다. 당시에도 그랬지만 전쟁후 빨갱이가 있는 가족은 상당한 피해를 당해야 했기 때문이다. 조사원이었던 나조차 우리 가족(먼 친척)중에 보도연맹원과 관련이 있는 분이 살아계시다는 것을 30년만에 알았을 정도였다.

할머니에게 대충의 설명을 듣고 찾아간 먼친척 할머니는 50년이 넘은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말하기를 꺼려했다. 좌익이었던 부모님이 학살당해 시신조차 찾지 못했던 끔찍한 일을 당했지만 그 누구에게도 정당한 보상을 요구하지 못하고 죽을때까지 비밀로 간직했던 것이다. 그 이유는 혹시나 피해를 받을까봐이다.

공주지역에서만 수백명의 피해자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유족이나 증언을 해줄 사람을 찾는 것은 쉽지가 않았다. 역시나 이유는 혹시나 모를 피해를 받을까봐이다. 군사독재 시절도 아니고 한국전쟁이 일어난지도 수십년이 지났는데도 당시의 기억은 잊을수 없는 것이다. 언제다시 빨갱이 가족이라며 피해를 받을지 모른다며 조사에 잘 협조해주지 않았다.

심지어 조사에 잘 응해주다가도 마지막에 이름을 물어보고 사진을 찍으려고 하면 극구 사양하던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기록에 남고 이름을 알아가면 그것이 기록이 되어 나중에 자기 후손들에게 어떤 피해가 갈지 모른다는 것이다. 당시엔 전혀 이해를 할 수 없었고 이제 다 지난일들을 그렇게까지 거부해야할 이유가 있을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고 남북관계는 틀어지고 사회에 대한 통제가 심해지면서 나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전교조 명단 공개와 우리법연구회 명단 공개를 보면서 '이게 바로 2010년 보도연맹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보수단체들은 쉴새 없이 각종 명단을 공개하고 올바른 소리를 하는 사람들을 고소했다. 친북인명사전이라는 것까지 발간하며 색깔칠하기에 바쁘다.

천안함 사태가 벌어지고 지금 우리사회는 조만간 전쟁이 발발할것 같은 분위기(또는 몰아가는)이다. 만약 전쟁이 발발했다고 했을때 보수단체가 주장하는 친북인사들과 정부가 편을 갈라놓은 촛불단체와 인사들이 받을 피해를 생각해보면 끔찍하다. 1950년의 끔찍한 일들이 재현될지도 모르는 사회분위기이다.

그동안 세계 분쟁지역에서 벌어지는 인종학살을 보면서 이른바 '후진국'에서나 벌어지는 일쯤으로 생각했다. 가끔 세계뉴스에 나오는 화면을 보며 안타깝다는 생각만 했지 그런 일들이 2010년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부끄럽기 그지없다. 피를 보는 살인만 하지 않았지 정치권이나 사회분위기나 서로 편가르고 인격학살을 하기에 바쁘다.

정권이 바뀌면서 보도연맹과 민간인 학살에 대한 조사도 흐지부지 되었다. 기억하지 못하는 역사는 되풀이 된다고 누군가 말했다.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고 반성하지 않는 사이 역사는 다시 1950년으로 돌아가고 있다. 피해자들은 민간인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