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범이 기아타이거즈에 없었다면 (한국시리즈 1차전을 보고)

흑백테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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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10. 17. 01:25

기아타이거즈가 2009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접전 끝에 SK를 이겼다. 경기 내내 중계를 보며 마음을 졸이며 기아를 응원했다. 사실 나는 한화이글스의 팬인데도 말이다. 지난 베이징올림픽 결승이나 WBC 일본전 처럼 가슴이 쿵쾅쿵쾅 뛰면서 긴장했다. 내가 좋아하는 팀도 아닌데 말이다.

이유는 바로 이종범이 한국시리즈에서 뛰고 있었기 때문이다. 90년대 날고 뛰던 해태타이거즈 유격수 이종범이 아니라 기아타이거즈의 외야수 이종범이지만 그래도 이종범은 이종범이다. 내가 야구를 좋아하게된 90년대 초. 빙그레이글스에도 이강돈, 장종훈 같은 멋진 선수가 있었지만 해태엔 선수 이상의 선수였던 이종범이 있었다.

90년대 이종범은 상대팀 팬조차 반하게 만드는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빠른발과 정확한 타격 그리고 수비까지 뭐하나 빠질것 없는 완벽한 선수였다. 하지만 세월은 영원할것만 같았던 이종범도 비켜갈수 없었다. 일본 진출실패와 이어진 실력저하 그리고 하위권을 맴도는 팀 성적으로 인해 이종범의 설자리는 점점 줄어들었다.

결국 2~3년전부터 이종범은 세대교체를 위해 희생양의 제물이 되어야 했다. 매 시즌이 끝날때마 은퇴종용을 받았지만 실력으로 말하겠다며 은퇴를 거부했다. 당시 30대 후반, 사실 그렇게 많은 나이도 아니지만 하위권을 허우적 거리는 기아타이거즈에게 희생양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끊어질듯 끊어질듯 한 이종범의 선수생활은 2009년까지 오게 되었다. 올해 기아타이거즈의 성적이 좋아지자 공은 다시 이종범에게 돌아갔다. 사람들은 이종범이 기아의 중심이라며, 올해 기아의 호성적은 이종범때문이라며 말했다. 이종범은 항상 그자리에 있었을뿐인데 말이다.

오늘 기아의 찬스에서 이종범은 팀을 구했다. 안타를 치고 나가 환호하는 이종범을 보면서 전성기 해태타이거즈의 이종범이 스쳐갔다. 이종범은 단순한 안타가 아닌 경험이 없는 젊은 선수들에게 자신감을 줬다. 젊은 선수들로만 구성된 두산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것과는 달리 기아는 이종범이 있기에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불혹을 앞둔 이종범의 어쩌면 마지막이 될 수 있는 한국시리즈를 보면서 나도 추억에 젖었던 시간이었다. 

오늘 도루왕 전준호가 방출되었다는 뉴스가 있었다. 흐르는 세월은 어쩔수 없지만 전준호 같은 대선수에게 방출이라는 단어는 어색함을 떠나 당황스럽다. 화려한 은퇴식은 아니더라도 그렇게 떠나 보내는 것은 우리에게 즐거움을 준 그에게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가정이지만 만약 2년전에 이종범이 은퇴했다면, 그리고 오늘 이종범이 없었다면 기아타이거즈와 팬들은 환호할 수 있었을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