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건축] 조선중앙일보, 몽양 여운형과 손기정의 흔적
흑백테레비
·2010. 1. 8. 15:20
안국역에서 내려 조계사를 들려 걷다가 길 건너편의 건물에 눈길이 갔습니다. 예전부터 근대건축물에 관심이 있어 사진기록으로 남기려고 했는데 몇번 답사를 다니다가 한참 쉬고 있습니다. 횡단보도를 건너 안내 표지판을 보니 몽양 여운형의 조선중앙일보 건물이었습니다. 지금은 농협의 지점으로 쓰이고 있더군요. 다행이 근대건축물로 지정이 되어 보존되고 있지만 그렇지 못한 많은 건물들이 개발이라는 이름아래 사리지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조선중앙일보는 몽양 여운형선생이 사장으로 재직했고 베를린올림픽때 손기정의 일장기를 지워서 무기한 정간 처분을 받기도 한 조선 3대 민간신문중에 하나였습니다. 건물은 1926년에 건축되었으니 올해로 84년이 되었습니다. 멀쩡한 건물들을 부수고 개성없는 회색빌딩으로 만들어버리는 도시개발정책이 바뀌지 않는한 전국의 많은 근대건축물들이 사라질 것입니다.
1933년 2월 16일 여운형(呂運亨)이 《중앙일보》의 사장에 취임하여 3월 7일부터 제호를 《조선중앙일보》로 고쳤다. 1934년 6월 27일에는 사의 조직을 자본금 30만 원의 주식회사로 개편하고, 사장에 여운형, 부사장에 최선익(崔善益), 전무에 윤희중(尹希重), 편집국장에 김동성(金東成) 등의 진용으로 《동아일보》 《조선일보》와 함께 민간 3대지로서 경영의 안정을 기하게 되었다.
그러나 1936년 8월 13일자 신문에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을 차지한 손기정(孫基禎) 선수의 사진을 실으면서 가슴에 달린 일장기를 지워버린 것이 말썽이 되어 그보다 며칠 뒤에 역시 손기정 선수 사진에서 일장기를 지운 《동아일보》와 함께 9월 5일부터 무기정간 처분을 받았다.
이 무기정간은 이듬해인 1937년에 해제되기는 하였으나, 휴간 동안에 뿌리깊은 사내의 내분이 다시 일어나고, 재정상태는 재기불능으로 악화되어 1937년 11월 5일 허가의 효력이 상실되어 일제 치하 민간 3대지의 하나였던 《조선중앙일보》는 폐간되었다. 자매지로는 월간잡지 《중앙(中央)》(1933.11)과 《소년중앙(少年中央)》(1935.1)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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