삥뜯는 청와대, 통신3사에 250억원 요구

흑백테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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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10. 7. 15:13


과거 군사독재정권 시절엔 청와대가 돈을 요구하면 갖다 바쳐야 했다. 거부했다가는 그룹 전체가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는 시대였다. 하지만 민주화 과정을 거치면서 대놓고 돈을 요구하는 시대는 지나갔다(아니 지나갔다고 생각했다). 물론 한나라당의 차떼기 사건이나 대통령 측근들의 비리는 여전했지만 청와대가 요구한다고 해서 '예'하며 가져다 주는 시대는 먼 옛날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한국디지털미디어산업협회 로고


오늘 신문을 보니 한국디지털미디어산업협회라는 민간단체에 기금에 돈을 내놓으라며 청와대가 요구한 것으로 드러났다. SK와 KT엔 100억원씩 LG엔 50억을 기금으로 출연하라고 요구했는데 SK와 KT는 기금을 내놓기로 했지만 LG는 난색을 표명하고 있다. 한국디지털미디어산업협회는 이명박 대통령의 언론특보를 지낸 김인규씨가 회장으로 있다.

법적으로 통신3사가 거액을 내놓아야 할 이유도 없지만 청와대와 정권실세가 내놓으라고 하니 거대 기업들도 어쩔수 없는 모양이다. 한국디지털미디어산업협회는 IPTV협회인데 IPTV가입자가 늘어나고는 있지만 당초보다 수익성이 적은것이 현실이다. 그런데도 청와대와 코디마는 통신3사에 거액을 요구하고 있다.

협회가 출범할때 이미 기업들은 20억원씩 출연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협회 임직원의 인건비로 쓰이고 사업비는 2억원에 불과했다고 한다. 이런데도 청와대와 협회는 기업들에게 250억원의 거액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얼마전 통신비 인하 정책을 발표했지만 수박 겉핥기라는 지적이 있다. 250억이라는 거액을 어려운 이웃이나 통신환경 개선에 쓴다면 통신료는 더욱 인하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사건을 보면 마치 골목에서 어린학생들 삥뜯는 동네 불량학생들 같아 보인다. 정부는 출범 초부터 작은정부를 지향하고 시장경제를 중요시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정책들을 보면 오히려 정부 규모는 커지고 시장에 대한 간섭은 더욱 늘었다. 예전처럼 정부가 나서서 기업을 통폐합시키지는 않지만 세련되게 뒤에서 압박하면서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키고 있는 것이다.

누가 박정희와 전두환의 후예들이 아니랄까봐 군사독재정권 시절에 하던 일을 답습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80년대로 후퇴하고 있다고들 말하는데 민주주의뿐만 아니라 정치와 행정도 후퇴한 것 같다. 경제인을 청와대로 불러서 돈을 내놓으라고 당당하게 요구하는 것이다.

한국디지털미디어산업협회는 민간단체이다. 통신3사가 돈을 내놓던지 안내든지 청와대가 개입할 사항이 아닌 것이다. 진통이 있어도 자율적으로 하면 되는 것이지 청와대가 개입해서 교통정리를 하고 말 것이 없는 문제인 것이다.

250억원이라는 거액이 협회의 운영비로 쓰이기보다는 통신비 인하와 환경 개선에 쓰이거나 사회에 환원되었으면 한다. 정 협회의 안정에 큰 돈이 필요하면 정부에서 내면 될 것 아닌가? 4대강 살리기에 엄청난 돈을 쏟아부으면서 고작 250억원이 없을 거라고 나는 생각 안한다.

* 하긴 청와대 입장에선 비즈니스 프렌들리니까 친구한테 250억원 좀 투자 못하냐고 할 수도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