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그 멀다는 소요산을 다녀왔습니다. 서울 근교의 산이라고 해서 무작정 떠났는데 왕복하는 시간이 만만치 않더군요. 지하철로 이동했는데 제가 사는곳(김포공항)에서 동두천의 소요산까지는 정말 고난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래도 주말을 맞이해서 올라간 산은 마음을 참 기분좋게 해주더군요. 소요산은 솔직히 산이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의 높이(587m)입니다. 정상까지 올라가는데 1시간도 안걸리고 초반의 계단만 잘 올라간다면 그리 어렵지 않은 난이도입니다.

하지만 서울북부에서는 쉽게 찾아갈수 있는 주말이면 많은 등산객들로 붐비는 산입니다. 높지는 않지만 산세가 멋있고, 자재암이라는 유서 깊은 절도 있습니다. 이곳은 원효대사와 요석공주의 이야기가 전해져 오는 곳이기도 합니다. 단풍철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소요산을 찾는 사람들로 지하철역에서부터 붐비었습니다. 자재암을 지나니 가파른 계단이 있는데 그 구간이 조금 힘듭니다. 쉬어가면서 천천히 오르면 어느덧 정상에 올라온것을 느낄수 있습니다.

정상에서 바라본 주변 풍경은 가슴이 탁 트이더라구요. 경기 소금강이라고 불리우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조그만 산에 각양각색의 바위와 폭포가 어우러져 있는 것이 멋졌습니다. 자재암을 올라가는 입구쯤엔 원효바위가 있는데 원효대사와 관련된 전설이 있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조금 더 올라가면 조그만 암자인 자재암이 나옵니다.

국립공원이 아니라서 문화재 관람료는 어른기준 1,000원을 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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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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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재암 앞의 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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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 밑의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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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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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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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로 입구의 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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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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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요산 단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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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관람료 표지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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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요산 등산 안내도


산이 그리 높지 않기 때문에 가족동반 등산객도 많고 어린아이와 함께 산을 오르는 등산객들도 많았습니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가벼운 등산을 계획하는 분들은 소요산을 추천해드립니다.
wrote at 2010.11.18 16:51 신고
작년에 소요산에 축제때문에 댕겨온 기억이 나네요.
불꽃 놀이를 하다가 산불이 날뻔 했던 아찔한 기억이
wrote at 2010.11.18 17:37 신고
왠지 옛 고승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 기분이 들것 같네요.
소성거사처럼 무언가 깨달음을 받을 수 있다면 더욱 좋은 산행이었겠습니다.
날세 
wrote at 2010.12.30 10:22 신고
소요산 가볍게 올라가 경치를 즐기기 좋은 산이죠...
wrote at 2018.08.26 21:05 신고
안녕하세요.
저는 지성의 전당 블로그와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데,
원효대사에 대한 글이 있어서 댓글을 남겨 보았습니다.

인문학 도서인데,
저자 진경님의 '불멸의 자각' 책을 추천해 드리려고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와 죽음에 대한 책 중에서 가장 잘 나와 있습니다.
아래는 책 내용 중 일부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제 블로그에 더 많은 내용이 있으니 참고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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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식할 수가 있는 ‘태어난 존재’에 대한 구성요소에는, 물질 육체와 그 육체를 생동감 있게 유지시키는 생명력과 이를 도구화해서 감각하고 지각하는, 의식과 정신으로 나눠 볼 수가 있을 겁니다.

‘태어난 존재’ 즉 물질 육체는 어느 시점에 이르러 역할을 다한 도구처럼 분해되고 소멸되어 사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 육체를 유지시키던 생명력은 마치 외부 대기에 섞이듯이 근본 생명에 합일 과정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육체와의 동일시와 비동일시 사이의 연결고리인 ‘의식’ 또한 소멸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추후에 보충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이러한 총체적 단절작용을 ‘죽음’으로 정의를 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감각하고 지각하는 존재의 일부로서, 물질적인 부분은 결단코 동일한 육체로 환생할 수가 없으며,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의식’ 또한 동일한 의식으로 환생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정신은 모든 물질을 이루는 근간이자 전제조건으로서, 물질로서의 근본적 정체성, 즉 나타나고 사라짐의 작용에 의한 영향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나타날 수도 없고, 사라질 수도 없으며, 태어날 수도 없고, 죽을 수도 없는 불멸성으로서, 모든 환생의 영역 너머에 있으므로 어떠한 환생의 영향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신에 대한 부정할 수가 없는 사실이자 실체로서, ‘있는 그대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본체에 의한 작용과정으로써 모든 창조와 소멸이 일어나는데, 누가 태어나고 누가 죽는다는 것입니까? 누가 동일한 의식으로 환생을 하고 누가 동일한 의식으로 윤회를 합니까?

정신은 물질을 이루는 근간으로서의 의식조차 너머의 ‘본체’라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윤회의 영역 내에 있는 원인과 결과, 카르마, 운명이라는 개념 즉 모든 작용을 ‘본체’로부터 발현되고 비추어진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자신을 태어난 ‘한 사람’, 즉 육신과의 동일성으로 비추어진 ‘지금의 나’로 여기며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로 착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한 사람’은 스스로 자율의지를 갖고서,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행동한다고 믿고 있지만 태어나고 늙어지고 병들어지고 고통 받고 죽어지는, 모든 일련의 과정을 들여다보면 어느 것 하나 스스로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책임을 외면하기 위해 카르마라는 거짓된 원인과 결과를 받아들이며, 더 나아가 거짓된 환생을 받아들이며, 이 과정에서 도출되는 거짓된 속박, 즉 번뇌와 구속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환영 속의 해탈을 꿈꾸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저는 ‘나는 누구이며 무엇이다’라는 거짓된 자기견해 속의 환생과 윤회는, 꿈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습니다. 더불어서 ‘누구이며 무엇이다’라는 정의를 내리려면 반드시 비교 대상이 남아 있어야 하며, 대상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는 그 어떠한 자율성을 가졌다 할지라도, ‘그’는 꿈속의 꿈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뚜렷하고 명백하다 할지라도 ‘나뉨과 분리’는 실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저는 ‘나’에 대한 그릇되고 거짓된 견해만을 바로잡았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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