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로드(The Road), 2012보다 현실적인 지구종말 [주말영화추천]

흑백테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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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1. 9. 10:47

이번주 개봉작인 <더 로드>를 보고 보고 왔습니다. <더 로드>라는 원작을 보지 않은 저는 헐리우드 재난영화 혹은 액션과 CG가 넘쳐나는 영화인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어제 본 <더 로드>는 <2012>같은 재난영화도 <아바타>같은 컴퓨터그래픽의 영화가 아니었습니다.요즘 영화들이 워낙 화려하고 반전이란 요소가 들어가는 것이 유행처럼 되다보니 그렇지 않은 영화들은 관객들이 외면하는 경향이 있기도 합니다. 보기에 따라서는 상당히 재미도 없고 결말도 없는 영화로 비춰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더 로드>는 손에 땀을 쥐는 액션이나 화려한 볼거리가 없어도 2시간에 이르는 상영시간 내내 빠져들었습니다. 요즘 한국 영화에서 유행하는 개성넘치는 조연이 있는것도 아니고 주인공인 아버지와 아들만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출연배우가 적은대도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아마도 탄탄한 스토리와 충격적인 이야기때문일 것입니다. 

대재앙 이후 도시는 파괴되고 자연은 황폐해져서 살아남은 동식물은 소수의 인간이 전부인 세상이 되었습니다. 정부도 없고 사회도 파괴되었습니다. 이웃끼리 서로 도와가며 살던 세상은 사라지고 먹을 것이 없어 '인육'을 먹는 시대입니다. 주인공인 아버지와 아들은 살아남기 위해 따뜻한 남쪽을 향해 긴 여정을 떠나게 됩니다. 곳곳에서 이들을 노리는 갱단을 피해 위기를 넘고 넘어 기다리던 바다에 도착하지만 이들 부자에겐 시련이 끝나지 않습니다.


2시간동안 영화에 빠져들수 있었던 것도 위와 같은 충격적인 이야기때문입니다. 그동안 지구의 종말을 이야기하는 영화들이 많았습니다. 얼마전 <2012>가 많은 관객들에게 인기를 끌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2012>나 <해운대>같은 대부분의 재난 영화들은 인간이 어떻게든 재난을 이겨내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으로 결말을 맺고 있습니다. <더 로드>도 결국엔 '희망'이라는 것을 잊지는 않지만 인간이 재앙을 맞은 이후 살아가는 모습이 너무나 구차하고 힘겨워 보입니다.

인간성이라는 이성을 상실하고 배고픔에 오직 동물적인 본능만 살아남아 인간이 인간을 잡아 먹는 것이 어쩌면 현실적일 것입니다. 지구가 종말의 위기를 맞은 상황에서 헤피엔딩은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희망사항뿐일지도 모릅니다. 모든 것이 파괴된 세상에서 살아야 한다는 일념아래 '이기심'을 갖는 것은 당연할 것입니다. 아버지와 아들도 둘은 부성애가 넘쳐나지만 둘이라는 틀을 벗어나면 이기적인 인간일 뿐입니다. 

영화를 보고 난후 다른 영화들처럼 '재미있다''잘보았다'라는 생각보다 '참 처절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육을 먹으며 살아야 할만큼의 상황이라면 과연 산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남편, 그리고 아들과 함께 남쪽으로 떠나지 않고 죽음을 택한 엄마의 선택이 더 옳아 보였습니다. 지구가 종말해도 인간이라는 존재가 끝까지 살아남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라는 근본적인 의문이 들었습니다. 

포스터의 문구처럼 전세계를 사로잡은 인류의 마지막 사랑일지 아니면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구질구질한 사랑일지는 영화를 보시고 각자 판단하면 될 것 같습니다. 아버지역의 비고 모텐슨, 아들역은 스미트 맥피, 엄마역은 샤를리즈 테론이 맡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