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있는 지리산 둘레길 걷기여행

흑백테레비

·

2009. 8. 14. 16:34



예전부터 지리산을 올라보고 싶었다. 정상을 밟고 싶었다. 일주도로를 몇번 가보고, 종주는 못했지만 일부구간을 올라보기도 했다. 작년의 종주 실패 이후엔 더욱 지리산을 정복(?)하고 싶어졌다. 하지만 <지리산 둘레길 걷기여행>이란 책을 읽고 생각이 바뀌었다.

나는 그동안 지리산을 비롯하여 산을 오르는 것을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자연과 하나되고, 나를 반성하는 시간으로 삼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순전히 나만의 생각이었다. 주말 시간을 바쁘게 쪼개어 정상까지 숨을 헐떡이며 오르는 것도 지금 생각해보니 '쉼'보다는 또 하나의 일이었던 것이다.

꼭 정상을 오르지 않아도 지리산을 종주하지 않아도 되는데 왜 강박관념을 가지고 살아갈까 하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높은 정상에 오르지 않으면 넓은 세상을 보지 못하겠지만 산 밑을 천천히 걸으면 세상과 가까운 곳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데 말이다.

<지리산 둘레길 걷기여행>은 지리산 800리의 자연과 지리산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책이다. 지리산을 종주하는 이야기가 아닌 지라산 둘레를 천천히 걸어가며 만나 자연과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옛 지리산 둘레길은 사람과 이야기가 만나는 길이었다. 그 길을 통해 교류하고 소통했다.

오직 정상을 향해 산을 오르고 다시 내려가는 방식에선 느낄 수 없는 것들을 지리산 둘레길 걷기에선 느낄 수 있다. 삶의 이야기와 풍경이 녹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제주 올레가 주목받는 이유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그동안 차와 바쁜 일정속에선 만날 수 없는 것들을 보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지리산 둘레길 걷기 여행>책을 읽으면서 지리산 종주가 아닌 지리산 둘레, 아니 사람 냄새 나는 마을들을 걸어보고 싶어졌다. 마을길, 오솔길, 고갯길, 옛길, 강변길을 따라 걸으면서 삶의 희노애락을 느껴보고 싶어졌다.

꼭 지리산 둘레길이 아니어도 자신의 마을을 걸어본다면 그동안 잊고 있었던 지나쳤던 것들이 다시 보일 것이다. 내 주변의 소중함도 알고, 건강도 챙긴다면 그것보다 좋은 일석이조는 없을 것이다.

책은 재미없는 여행관련 서적들과는 다르게 수필과 정보가 적절히 어우러져 있다. 먹거리와 교통편도 자세하게 나와있고 지도도 보기좋게 알려준다. 또한 마을마다 재미있고 유익한 이야기거리를 소개해줘서 자칫 걷기만하는 여행을 방지해준다.


지리산 둘레길은 아직 완전히 개통이 되지는 않았다. 2008년부터 닦아나가고 있는데, (사)숲길과 산림청이 지리산 옛길 복원사업을 진행했는데 산림청이 지방자치단체에 사업을 이관하는 바람에 완전 개통이 늦어지고 있다고 한다. 현재는 남원, 함양, 산청까지 70km의 구간이 1단계로 개통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