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근 은퇴, 사법살인 인혁당 사건이 생각난다.

흑백테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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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9. 15. 17:50



지난달 음주파문에 휩싸여 롯데에서 방출되었던 정수근이 결국 은퇴를 선언했다. OB(두산의 전신)와 롯데를 거치면서 통산타율 280, 1,544경기 출장, 866득점, 1493안타, 450타점, 474도루의 준수한 성적을 남긴 정수근은 좋은 성적에도 불구하고 잊을만하면 터져나오는 경기외적인 문제때문에 결국 유니폼을 벗게 되었다.

정수근하면 두산시절 홍성흔과 함께 덕아웃의 파이팅을 이끌었고 빠른발로 2루를 훔치던 원조 날쌘돌이 이미지가 강하다. 하지만 그의 사생활은 항상 언론의 주목을 받았고 급기야 2년전엔 만취후 폭행사건으로 1년간 야인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올 여름 결국 롯데로 다시 돌아와 롯데의 상승을 주도했지만 술집 종업원의 거짓 신고로 황당하게 은퇴를 하게 되었다.

이는 정수근 본인은 물론 한국 야구사에도 큰 불행이라고 생각한다. 소속 선수를 보호해야 할 구단과 KBO는 자신들에게 피해가 올까봐 서둘러 정수근을 내쳤다. 롯데와 KBO는 정확한 사실관계 파악은 뒤로한채 여론에 떠밀려 정수근에게 방출과 징계라는 결정을 내렸다. 

정수근이 음주 난동을 부렸다고 신고했던 종업원의 거짓신고였다고 뒤늦게 밝혀졌지만 이미 소문은 날대로 났고 여론은 안좋을대로 안좋아졌다. 설사 정수근이 난동을 부렸다고 해도 롯데와 KBO는 진상이 파악되고 절차를 밟아 징계를 해도 되는데 무언가에 쫓기듯 정수근의 인생을 망쳐버렸다.

언젠가부터 언론들이 블로그보다 정확도와 신뢰도가 떨어진다. 인터넷으로 떠도는 소문도 그럴싸하게 포장해 보도하고 진상이 파악되지 않는 소식을 서둘러 보도하곤 한다. 때문에 억울한 피해자들이 생기지만 언론은 사과와 반성은 커녕 이런 보도행태를 반복하고 있다. 이번달 들어서만 2PM 박재범과 정수근이 과장된 언론의 보도때문에 한국을 떠나야 했고 은퇴를 하게 됐다.

누가 정수근의 은퇴를 책임져야 할까? 거짓 신고한 술집 종업원? 많은 분들이 동감하겠지만 우리나라 언론들의 책임이 크다. 이른바 중앙일간지들도 연예신문이나 타블로이드 주간신문처럼 선정적인 제목과 낚시성 제목짓기에 빠졌다. 기자들은 직접 발로 뛰며 취재하기보다는 연합뉴스의 보도자료와 인터넷 서핑에서 블로그 글 베끼기에 바쁘다. 

선정적이고 정확하지 않은 언론의 보도에 사람들은 쇠뇌되어 있고 생각하기보다 그대로 믿기에 바쁘다. 이때부터 소문은 확대재생산되어 마치 신문의 보도가 내 생각인것처럼 믿게 된다. 정수근 은퇴는 롯데와 KBO, 언론과 네티즌이 합작해서 벌인 합작품이다. 

이종범처럼 앞으로 10년은 더 그라운드에서 볼수 있었던 정수근의 플레이를 이제 볼 수 없다니 안타깝다. 언론이 사실을 파악하고 몇시간만 더 뒤에 보도했더라면 롯데와 KBO가 선수를 먼저 보호했더라면 네티즌들이 비난보다 진상파악 요구를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박정희 정권시절 사법살인이라고 불리는 인혁당 사건이 있었다. 죄없는 사람들을 간첩으로 몰았고 법원은 박정희 정권의 눈치를 보며 사형을 판결했다. 박정희 정권은 대법원 확정판결후 18시간만에 사형을 집행했다. 이후 세월이 지나 인혁당 사건이 조작된 것으로 밝혀졌지만 이미 그들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2009년 9월 15일 프로야구에서 거짓 신고로 징계를 받은 선수가 유니폼을 벗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