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 쓰나미는 있지만 상상력은 없었다

흑백테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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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7. 24. 02:24


실제 쓰나미의 장면


트랜스포머2를 보고 난후 한참동안 영화를 보지 못했습니다. 일도 바빴지만 볼만한 영화도 없었기 때문이죠. 오늘 버스를 타고 가다가 영화관에 붙어 있는 <해운대> 현수막을 봤습니다. 간간히 소식을 들어 무슨 내용인줄은 알고 있었지만 그다지 보고 싶었던 영화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날도 넙고 저녁에 할일도 없어 신촌의 아트레온 극장으로 갔습니다.


언론과 리뷰에서는 <해운대>의 흥행을 예상하며 연일 찬사를  쏟아내는데 막상 극장엔 빈자리가 많더군요. 뭐, 어쨌든 영화는 시작되었습니다. 초반부는 출연 인물들의 이야기였습니다. 웃기는 장면들이 많더군요. 몸개그가 관객들을 웃게 만들었습니다.

조연들의 연기도 좋았고, 무엇보다 설경구와 이대호(롯데의 야구선수 이대호 맞습니다)의 사직구장 에피소드가 재미나더군요. 이대호의 연기(?)도 좋았고, 설경구의 야구장 난동이 너무 사실적이어서 약간의 씁쓸함마저 주더군요. 

설경구와 하지원 그리고 그 주변인물들이 주로 웃기는 역할을 맡았다면 박중훈과 엄정화, 특히 박중훈은 쓰나미에 대해 설명해주는 역할입니다. 과학적으로 쓰나미가 그렇게 생기는지는 잘 몰라도 나름 논리적으로 설명해 줍니다.


하지만 인물 설명과 코믹스런 에피소드들이 너무 많은 시간을 차지한 느낌이 듭니다. 재난영화인줄 알고 보러 갔는데 원하던 재난 장면은 뒤늦게 나오더군요. 웃기는 장면도 좋지만 재난영화라면 재난영화 다워야 하는데 감독이 너무 많은 것들을 섞으려 했던 것 같습니다. 감독도 '한국식 재난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하는데 한국식이 뭔지 모르겠습니다. 한국 관객들은 특별한 것이 있나.....

상상력이 부족했던 것도 아쉽습니다. 쓰나미가 드디어 밀려오고 해운대의 모든것을 파괴하는 장면은 나름 볼만합니다. 하지만 뭔가 아쉬운 느낌은 지울수가 없었습니다. 거대한 파도가 유조선도 밀려오게 만드는 힘이라면 배들이 육지에 걸쳐 있다든가 물이 빠진후에 빌딩 위에 배가 있다든가 하는 쓰나미의 위력을 극대화 시킬수 있는 장치들이 많을텐데 상상력이 부족해 보이더군요. 컴퓨터그래픽이 부족하더라도 상상력을 발휘했다면 더 재미있는 영화가 됐을 겁니다.

사실 CG는 부족해 보입니다. 파도 부분은 그렇다쳐도 해운대의 고층빌딩들이 무너지는 장면은 너무 티가 많이 납니다. 저는 티나는 CG보다는 너무 짧은 쓰나미 장면이 아쉽더군요. 해운대 보러 오신 분들 대부분 쓰나미 장면 보러 온건데 해운대가 파도에 휩쓸리는 장면은 영화의 후반부에 그것도 얼마 나오지 않습니다. 부족한 CG라도 재난영화답게 그런 부분을 많이 보여줬으면 좋았을텐데 말입니다.

스토리도 너무 예측이 가능한 것도 문제입니다. 이런 영화들은 의외성과 연관성 그리고 사실성이 있어야 하는데 모두 예측 가능한 일들이 벌어집니다. 특히 파도가 휩쓸리고 난 후의 다리 위에서의 에피소드는 예측가능한 장면이었습니다. 더군다나 장면들이 외국영화 중에 어디선가 본 것 같은 느낌마저 줍니다.

이런류의 영화들은 대부분 사실성이 있어야 관객들이 더 몰입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해운대는 물에 빠진 박중훈이 핸드폰으로 통화를 한다거나(핸드폰도 물에 젖을뿐만 아니라 기지국도 초토화됐을텐데 말이죠) 고층빌딩도 무너진 파도앞에 두 주인공은 살아남는 대단함을 보여줍니다. 사소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런것들이 영화에 대한 몰입을 방해하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운대>는 볼만한 영화입니다. 그동안 영화 소재가 천편일률적(깡패이야기나 사랑이야기)인 한국영화중에서 쓰나미라는 색다른 소재로 영화를 만들었으니 흥행이 될지 기대가 됩니다. 너무 많은 이야기를 담으려고 해서 아쉽기는 하지만 재미도 있고, 발전하는 한국영화의 특수효과도 볼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더 하자면 박중훈의 "내가 네 아빠다"는 좀 너무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