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광장, 꽃보다 여백의 미가 필요하다.

흑백테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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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8. 3. 11:38

광화문 광장_서울시 보도자료


지난 주말 광화문 광장이 개방되었습니다. 조선시대 행정의 중심지였던 광화문 앞 거리가 시민들에게 돌아온 것입니다. 그동안 넓은 차도에 이순신 동상만이 외롭게 서 있었는데 이젠 시민의 곁으로 돌아왔습니다. 삭막한 도시에 광장이 생긴다는 것은 분명 환영해야 할 일입니다.

하지만 그동안 서울시의 광장에 대한 정책은 시청앞 서울광장에서 보듯이 시민들의 자발적인 행동을 억제하는 역할을 해왔습니다. 박물관의 유물들처럼 그저 바라보게만 만들었습니다. 때문에 서울광장은 죽어있는 광장이 되어버렸습니다.

2002년의 월드컵의 감동과 함성은 사리지고 경찰버스만이 광장에 남았습니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이야기하며 놀 수 있는 공간은 원천봉쇄 되었습니다. 정부와 서울시는 시민들에게 박제된 광장과 통제된 광장, 틀에 박힌 광장만 허용하고 만들고 있습니다.

광화문 광장은 전통적인 광장의 의미보다는 공원에 가깝습니다. 광화문 광장은 가지 조형물과 꽃밭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시민들은 그 주변부를 걷거나 관람할 수 있을 뿐입니다.

물론 답답한 빌딩으로 둘러쌓인 광화문에서 꽃과 분수가 있는 광화문 광장은 좋은 쉼터입니다. 하지만 광장이란 의미로 따져보면 광화문 광장에 그리 좋은 점수를 줄 수가 없습니다.


광장이란 뜻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광장 [廣場]
[명사]
많은 사람이 모일 수 있게 거리에 만들어 놓은, 넓은 빈 터.

즉, 광장은 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게 거리에 만들어 놓은 넓은 빈 터를 말하고 있습니다. 경찰이 봉쇄하기전의 서울광장처럼 말입니다. 외국의 유서 깊은 광장들도 이런 모습을 띄고 있습니다.

한국에선 전통적으로 여백의 미(美)를 중요시 했습니다. 꽉차고 답답한 인공적인 모습이 아니라 여백의 미가 있어 시민들이 모여 이야기할 수 있고, 상상할 수 있는 공간이었으면 어땠을까요.


전임 서울시장 이명박 대통령과 오세훈 시장은 인공적인 것들을 서울에 건설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청계천입니다. 인공으로 퍼 올려 흐르게 한 물과 대리석으로 치장된 벽은 우리가 생각하는 하천과는 많이 다릅니다. 그 리스트에 청계천에 이어 광화문 광장이 추가되었습니다.

서울시의 모토가 '창의시정'입니다. 하지만 광화문 광장을 보며 느낀 창의시정은 시민들에게 강제하는 '창의'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만들었으니 그냥 보기만 해라'라는 것이 광화문 광장입니다.

이번 광화문 광장을 보고 있자면 마치 몇백년된 나무를 보호한다며 틈새를 시멘트로 메꾸던 방식이 생각납니다. 광화문 광장이 광장의 역할을 하려면 꽃보다 여백이 필요하지 않을까요?